칼릴 지브란



그대들 가운데는 다만 홀로 있게 될까 두려워

이야기꾼을 찾는 이들이 있다.

외로운 침묵은 벌거벗은

자신을 눈앞에 드러나게 하며,

그리하여 달아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대들 중에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를

인식도 예견도 없이 드러내  떠드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또한 자기안에 진리를 지녔으면서 말로 하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 영혼은 이 같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움직거리며 말없이 머무는 것.

길가에서 시장에서 그대들 친구를 만나거든,

그대 안의 영혼으로 하여금 입술을 움직이게 하고

혓바닥을 이끌게  하라.그대 목소리 안의

목소리로 그의 귓속의 귀에게 말하게 하라.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그대 가슴의 진실을 마치 잊을 수

없는 포도주처럼 간직할 것이기에.

비록 그 빛깔 잊혀져 버리고

그 잔 또한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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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무량아승지 세계를 칠보로 가득채워서 보시로 사용하였고,

다른 선남자·선여인이 보살심이라는 것을 일으키어 금강경을 받아지거나 사구게등을

수지 독송하여 타인을 위하여 가르치고 연설하여 준다면 이 복덕이 훨씬 뛰어나고 수승한 것이다.

어찌 타인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이 복이 수승한가 하면

“불법이라는 것은 어떤상에도 집착됨이 없으므로 여여하여 변하거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 이라고

연설하고 가르치고 포교하기 때문에 수승하다.

왜냐하면 “일체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의 생멸 법은 꿈과 같고 환상·거품·그림자·이슬·전기와 같으므로,

일체에 나타난 현상세계의 모든것들은 이와같이 허망된 것임을 깨우쳐 여래와 같이 관하여야 한다.”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대한 설법을 끝마치자 장로 수보리와 그리고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일체 세간에 있는

천인·아수라등은 금강경의 의미를 이해하여 모두가 크게 환희하며 믿고 받아 지니고 받들어 실천할 것을 다짐하였다.

수보리야,

어떤이가 부처님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이는 내가 설한 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어떠한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는 것은 실체가 존재하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체의 존재가 없는 법을 설하기 위해 지칭하여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고 이름하여 불렀으므로

여래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없습니다.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은 모든 일체법에 있어서 여래와 같이 알아야 하고 당연히 여래와 같이 보아야 하고,

여래와 같이 믿고, 이해하여야 하고, 법이라는 것에 대해 어떠한 관념의 생각도 일으켜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다.

소위 불법의 형태라고 말하는 것은 여래가 설한 불법의 형태는 실체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법의 형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이름하여 불법의 형태라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면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이 티끌의 무리는 얼마나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아주 많읍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 티끌이라고 불리워지는 존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티끌의 무리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의 무리라는 것은 실체가 존재하는 티끌의 무리가 아니라

그 이름을 티끌의 무리라 불리워질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도 역시 실체의 세계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삼천대천세계라고 불리워 질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한 어떤 세계가 실체적으로 존재하여 있다면 이것은 한개의 형태이며

여래가 설하신 한 형태란 실체의 한 형태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름하여 한 형태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이것은 정해진 한 형태라고 규정지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범부중생이 구별하여 탐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한 형태라 규정지어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여래가 오거나 가거나 앉거나 눕거나 한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이제까지 설한 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라는 것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 것을 이름하여 여래라 한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항하사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세계를 칠보로 가득채워 보시에 사용하는 자가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이 모든 법에 나 없는 줄 알아서 확실한 인행(忍行)을 이루었다면,

이 보살은 칠보로써 보시한 보살의 공덕보다 더 나을 것이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러한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고로 수승하다 한다.

수보리는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찌하여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자신이 지은 복덕에 대하여 집착하거나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고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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