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에 어떤 사람이 있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채워 이것을 보시에 사용한다면 이 사람은 복덕의 인연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의 인연은 아주 깊고 많읍니다.

수보리야,

복덕이 실체가 있어 존재하고 있다면 여래께서 복덕을 많이 얻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복덕은 복덕의 설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고로 여래께서 설하시길 복덕이 많다고 설하신 것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육안을 갖추고 계시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육안을 갖추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천안을 갖추고 계시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천안을 갖추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는 혜안을 갖추고 계시는냐?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혜안을 갖추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는 법안을 갖추고 계시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법안을 갖추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불안을 갖추고 계시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불안을 갖추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에 있는 모래수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적이 있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항하의 모래수에 대하여 설하셨습니다.

한 항하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항하가 있고, 이 항하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부처님의 세계가 있다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아주많읍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와같이 많고도 많은 무량무수 무변한 국토에 살고 있는 일체중생의 가지가지로 일어나는 그 마음들을 여래께서는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래가 설하신 마음이란, 모두가 실체가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다.

수보리야,

이러한 연고를 마음이란 과거의 마음을 헤아려 잡을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도 헤아려 잡을 수가 없고,

미래의 마음도 헤아려 잡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때 수보리는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을 경우 어떻게 머므르게 하며 어떻게 제도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일으켰을 경우 당연히 여래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어,

나는 일체의 모든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일체중생들이 실재적으로는 제도된 바도 없으며

제도한 바도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왜그러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므로

보살이라 이름하여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왜 그렇느냐하면 수보리야,

보살이란 실체가 없으며 정해져 있지 않는법에 의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과거 전생에 연등부처님 시대에 태어나 살았을 때 어떤 법이 존재하여서 이러한 법에 의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의 의미를 해석하여 볼때 부처님께서 과거생에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계실적에는

정하여져 있지 않는 법에 의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렇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나는 실체도 없고 정해져 있지 않는 법에 의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

수보리야,

만일 실존하는 법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면, 과거세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너는 미래세에 호를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가 될 것이라는 결정적으로

정해진 예언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이와같이 정해져 있지 않는 법에 의존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어서

석가모니라는 부처가 될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연고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실때 너는 앞으로 오는 미래세에는

정해져 있지 않은 법을 얻어 호를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가 될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여래라는 것은 이러한 정해져 있지 않은 법에 의해서 이 법을 얻어서 부처가 되므로

여래는 모두가 같은 것이다.

만일 어떤이가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이것은 부처님이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정해져 있지 않는 법에 의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말하는 것에는 모두가 실다운 실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공허하여 모두가 빈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한 고로, 여래가 설하신 일체법은 모두가 불법을 설하신 것이다.

수보리야,

소위 일체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체법이라는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리라고 불리워지는

모두를 통칭하여 붙여 표현하길 일체법이라 한다.

수보리야,

이것은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신체가 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사람의 신체가 크다는 것은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어떤 실체의 형상에 어떤 신체 기준에 있어서

크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대상의 신체를 칭하여 크다고 부르는 것 뿐입니다.

수보리야,

보살도 이와같이 내가 무량무수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였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역시 보살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체가 정해져 있거나 어떤 규정이 지어져 있는 어떤 법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여 보살이라 이름하여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로, 부처님께서 설하시길 일체법이라는 것은 나도 없으며, 남도 없으며, 중생도 없으며,

오래산다는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나는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였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보살이라고 이름하여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시길 불국토를 장엄하다는 것은 장엄의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을 장엄이라 할 뿐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어떤 보살이 내가 없는 법에 통달되어 있다면, 이것을 여래께서는 내가 없는자를 칭하여

진실된 보살이라 이름하여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인이 이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외울 때 타인으로 미천하게 대우 받았다면

이 사람이 선세죄업으로 인하여 당연히 악도에 떨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죄업이 가벼워져서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역시 현시대에 사는 사람도 죄업이 즉시 소멸되어 현실에서 당연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내가 전생을 관하여 보면 무량아승지겁전에 연등부처님의 시대에 태어나 살았을 때

팔백사천만억의 부처님을 찾아가 친견하고 모든 공양을 받들어 모시고 보시행을 하는 것이

금생에 와서 살펴보면 하나도 헛되어 버린것 없이 행하였던 이상으로 돌려 받았다.

만일 말세의 어떤 이가 금강경을 능히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읽고 독송하는 공덕은

내가 과거세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 올린 공덕이 백분의 일 혹은 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비교될 수가 없는 공덕에 불과한 것이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말세에서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는 공덕은

내가 아무리 어떠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더라도 비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므로

금강경 독송의 공덕은 수승한 것이다.

만일 어떤이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광난을 일으키거나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수보리야, 너는 당연히 금강경의 의미는 불가사의 하고, 또한 금강경의 과보 역시

불가사의 하다는 사실을 당연히 깨우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와 같은 수없는 몸을 받아 보시를 사용하고, 오전중에도 다시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의 몸을 받아서 보시로 사용하고, 저녁에도 역시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많은 몸을 받아서 보시에 사용하기를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겁의 세월동안 이와같이 보시하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어떤이가 있어 금강경을 듣고 이해하여 신심을 잃지 않고 또한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 복덕이

오히려 더 수승하다.

이와 같이 공덕이 수승한데 어찌 금강경을 사경하고,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

타인에게 그 의미와 뜻을 전하여주고 가르치지 아니하겠는가.

수보리야,

이와같이 금강경으로 인해 얻어지는 복덕의 중요한 것만 간단히 요점만 간추려 설명하더라도

금강경의 공덕의 불가사의 함은 헤아릴 수도 없고 이루다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대승자들을 위하여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는가에 대하여 설하였고, 최상승자들을 위하여

마음을 어떻게 제도하는 설하였던 것이다.

만일 어떤이가 있어 금강경을 받아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고 있으므로 헤아릴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이 끝도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한 것을 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시말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여래의 대리인과 같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불법이라는 것에 안주되어 있는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되어 있어서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타인을 위하여 포교하고 가르치지 못한다.

수보리야,

어느 장소나 어느 때를 불문하고 금강경이 설하여 지는 곳에는 항상 일체세간에 있는

천인·아수라등이 당연히 공양을 바쳐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금강경이 설하여 지고 있는 곳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불탑이 계시는 것과 같으니

모두가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고 예의갖추고 옹호하며 주위를 돌며 향화를 뿌리며 공양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때 수보리는 금강경의 깊고도 깊은 의미를 깨달아 눈물을 흘리면서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의 깊고도 깊은 미묘한 법의 진체를 지닌 경전은 제가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닦아 얻어진

혜안으로 살펴볼때 아직까지 금강경과 같이 깊고도 깊은 심오한 법의 진체를 여실히 보여주신 경전은

얻어 듣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다른 어떤 이가 이 금강경을 듣고서 믿는 마음이 청정하고 실다운 신심을 일으킨다면

당연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체의 어떤 형상이라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실체의 상이 아니라

어떤 형상을 지징하여 이름하길 상이라고 불리워 질뿐 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금강경의 설법을 듣고서 믿어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데에 부족함이나 걱정할 것이 없으나

만일 앞으로 다가오는 이천오백년뒤인 미래세에는 어떤 중생이 있어 금강경을 얻어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지니겠습니까?

만일 금강경을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제일로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고로 아상은 아상이 있어서가 아니며, 인상·중생상·수자상도 역시 상의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이라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상이 없는 것입니다.

상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상이라 이름하여 부르는 일체의 모든 상들을 멀리 여윈 것을

일체의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하다.

만일 어떤 이가 있어 이 금강경을 듣고 놀래거나 공포에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아주 깊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자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일 바라밀은 바라밀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중에서 제일로 가는 바라밀이 아니라 바라밀이라는 이름하여

표현하고 있는 바라밀 중에서 제일로 가는 바라밀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이라는 것도 역시 인욕바라밀이라고하여 정해져 있는 인욕이라는 실체나 형태가 있어서가 아니라

참는다는 외형적인 어떤 형태를 이름하여 인욕바라밀이라고 부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전생에 가리왕이 나의 몸을 마디마디 찢을 때 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가리왕 시절에 나의 몸이 마디미디 찢어졌을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원망하는

원한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수보리야, 이것은 내가 전생에 인욕선인으로 500년 동안 사는 동안에 아상도 없었으며,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다.

이와같이 상이 없었던 것으로 비추어 볼때 보살이란 모든 일체의 현상을 멀리 여윈 상태여야하고

이렇게 멀리 여윈상태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일으킬지니

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는 것도 즉 머무름 아님이 된다.

그러한 고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마음이란 어떤 상에도 머무르는 마음이 없이

행하는 보시행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이란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여래와 같이 당연히 보시행을 하는 자를 말한다.

여래가 설하신 일체의 모든 상이라는 것은 어떤 실존하는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름하여 모든 상이라 하였고,

역시 일체중생도 중생이란 실체가 존재해서 명칭지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형태를 지칭하며

일체중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진실된 말씀만하는 분이고, 본질적인 실체만 말씀하시는 분이고, 여래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고,

광란된 말은 하지 않는 분이며, 이중된 말은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이 법은 진실된 실체가 정하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마음에 주하는 어떤 법이 있어서 이러한 보시행을 한다면 이 사람은 캄캄한 창고에 들어가서

물건을 찾는 것과 같아 아무것도 구별할 수도 볼수도 없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어떤것도 찾아 얻을수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보살이 마음에 집착된 것이 없는 보시행을 한다면 이 사람은 밝은 대낮에 눈을 크게 뜨고서 각종 물건들의

가지가지 색깔과 특징을 잘 살펴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 얻는 것과 같다.

수보리야,

앞으로 오는 세상에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능히 이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는 사람은

여래와 같은 공덕을 갖춘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깨달은 지혜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 그 사람이 무량무수하고 무변한 공덕을 성취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수보리는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고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여 우리들이 받들어서 수지독송하였으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하여 너희들은 받들어 수지독송하여라.”

그리고 수보리야,

내가 지금 말한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반야바라밀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어떤 법이라는 것을 설한 바가 있는냐?

수보리가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어떤 법이 있다는 것을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

삼천대천 세계에 있는 티끌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아주 많습니다.

수보리야, 모든 티끌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실체가 있어 티끌인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을 지칭하며 그 이름이 티끌일 뿐이다.

그리고 여래가 설한 세계도 역시 어떤 세계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형상의 세계를 지징하며 그 이름이 세계라 하였을 뿐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삼십이상이란 실체가 정해져서 존재하는 형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래께서 현재에 나타내 보여지는 32가지의 형상들을 지칭하여 이름하길 삼십이상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항하에 있는 모래수 만큼이나 되는 무수한 목숨을 보시에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다른 어떤 이가 있어 금강경이나 사구게등을 이해하여 생명과 같이 받아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면서

타인을 위해 가르치고 널리 포교한다면 이 보시의 복덕이 더욱 깊고 수승한 것이다.

그리고 수보리야, 이 경이 설하여 진다거나 타인을 위해 전해진다거나 수지독송하거나 사구게 등의 뜻이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며 잊어버리지 않는 곳에는 일체의 세간에 있는 천인·아수라등이 부처님이 계시거나 불탑과 사원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 모두가 공양을 받들어 모신다.

그러므로 어떤 누구라도 금강경을 생명을 다해 마음속으로 잊어버리지 않으며, 외우고, 독송하는 곳에 어찌 공양하고

그 공덕을 찬양하지 않겠느냐?

수보리야,

이렇게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최상 제일의 희유한 법을 성취한 것이며, 또한 이 금강경이 설해지는 곳은

부처님이 계신것과 같고 존경받는 부처님의 제자가 계신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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