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인이 이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외울 때 타인으로 미천하게 대우 받았다면

이 사람이 선세죄업으로 인하여 당연히 악도에 떨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죄업이 가벼워져서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역시 현시대에 사는 사람도 죄업이 즉시 소멸되어 현실에서 당연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내가 전생을 관하여 보면 무량아승지겁전에 연등부처님의 시대에 태어나 살았을 때

팔백사천만억의 부처님을 찾아가 친견하고 모든 공양을 받들어 모시고 보시행을 하는 것이

금생에 와서 살펴보면 하나도 헛되어 버린것 없이 행하였던 이상으로 돌려 받았다.

만일 말세의 어떤 이가 금강경을 능히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읽고 독송하는 공덕은

내가 과거세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 올린 공덕이 백분의 일 혹은 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비교될 수가 없는 공덕에 불과한 것이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말세에서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는 공덕은

내가 아무리 어떠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더라도 비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므로

금강경 독송의 공덕은 수승한 것이다.

만일 어떤이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광난을 일으키거나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수보리야, 너는 당연히 금강경의 의미는 불가사의 하고, 또한 금강경의 과보 역시

불가사의 하다는 사실을 당연히 깨우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와 같은 수없는 몸을 받아 보시를 사용하고, 오전중에도 다시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의 몸을 받아서 보시로 사용하고, 저녁에도 역시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많은 몸을 받아서 보시에 사용하기를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겁의 세월동안 이와같이 보시하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어떤이가 있어 금강경을 듣고 이해하여 신심을 잃지 않고 또한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 복덕이

오히려 더 수승하다.

이와 같이 공덕이 수승한데 어찌 금강경을 사경하고,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

타인에게 그 의미와 뜻을 전하여주고 가르치지 아니하겠는가.

수보리야,

이와같이 금강경으로 인해 얻어지는 복덕의 중요한 것만 간단히 요점만 간추려 설명하더라도

금강경의 공덕의 불가사의 함은 헤아릴 수도 없고 이루다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대승자들을 위하여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는가에 대하여 설하였고, 최상승자들을 위하여

마음을 어떻게 제도하는 설하였던 것이다.

만일 어떤이가 있어 금강경을 받아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고 있으므로 헤아릴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이 끝도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한 것을 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시말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여래의 대리인과 같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불법이라는 것에 안주되어 있는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되어 있어서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타인을 위하여 포교하고 가르치지 못한다.

수보리야,

어느 장소나 어느 때를 불문하고 금강경이 설하여 지는 곳에는 항상 일체세간에 있는

천인·아수라등이 당연히 공양을 바쳐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금강경이 설하여 지고 있는 곳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불탑이 계시는 것과 같으니

모두가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고 예의갖추고 옹호하며 주위를 돌며 향화를 뿌리며 공양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때 수보리는 금강경의 깊고도 깊은 의미를 깨달아 눈물을 흘리면서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의 깊고도 깊은 미묘한 법의 진체를 지닌 경전은 제가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닦아 얻어진

혜안으로 살펴볼때 아직까지 금강경과 같이 깊고도 깊은 심오한 법의 진체를 여실히 보여주신 경전은

얻어 듣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다른 어떤 이가 이 금강경을 듣고서 믿는 마음이 청정하고 실다운 신심을 일으킨다면

당연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체의 어떤 형상이라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실체의 상이 아니라

어떤 형상을 지징하여 이름하길 상이라고 불리워 질뿐 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금강경의 설법을 듣고서 믿어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데에 부족함이나 걱정할 것이 없으나

만일 앞으로 다가오는 이천오백년뒤인 미래세에는 어떤 중생이 있어 금강경을 얻어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지니겠습니까?

만일 금강경을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제일로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고로 아상은 아상이 있어서가 아니며, 인상·중생상·수자상도 역시 상의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이라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상이 없는 것입니다.

상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상이라 이름하여 부르는 일체의 모든 상들을 멀리 여윈 것을

일체의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하다.

만일 어떤 이가 있어 이 금강경을 듣고 놀래거나 공포에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아주 깊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자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일 바라밀은 바라밀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중에서 제일로 가는 바라밀이 아니라 바라밀이라는 이름하여

표현하고 있는 바라밀 중에서 제일로 가는 바라밀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이라는 것도 역시 인욕바라밀이라고하여 정해져 있는 인욕이라는 실체나 형태가 있어서가 아니라

참는다는 외형적인 어떤 형태를 이름하여 인욕바라밀이라고 부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전생에 가리왕이 나의 몸을 마디마디 찢을 때 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가리왕 시절에 나의 몸이 마디미디 찢어졌을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원망하는

원한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수보리야, 이것은 내가 전생에 인욕선인으로 500년 동안 사는 동안에 아상도 없었으며,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다.

이와같이 상이 없었던 것으로 비추어 볼때 보살이란 모든 일체의 현상을 멀리 여윈 상태여야하고

이렇게 멀리 여윈상태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일으킬지니

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는 것도 즉 머무름 아님이 된다.

그러한 고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마음이란 어떤 상에도 머무르는 마음이 없이

행하는 보시행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이란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여래와 같이 당연히 보시행을 하는 자를 말한다.

여래가 설하신 일체의 모든 상이라는 것은 어떤 실존하는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름하여 모든 상이라 하였고,

역시 일체중생도 중생이란 실체가 존재해서 명칭지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형태를 지칭하며

일체중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진실된 말씀만하는 분이고, 본질적인 실체만 말씀하시는 분이고, 여래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고,

광란된 말은 하지 않는 분이며, 이중된 말은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이 법은 진실된 실체가 정하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마음에 주하는 어떤 법이 있어서 이러한 보시행을 한다면 이 사람은 캄캄한 창고에 들어가서

물건을 찾는 것과 같아 아무것도 구별할 수도 볼수도 없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어떤것도 찾아 얻을수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보살이 마음에 집착된 것이 없는 보시행을 한다면 이 사람은 밝은 대낮에 눈을 크게 뜨고서 각종 물건들의

가지가지 색깔과 특징을 잘 살펴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 얻는 것과 같다.

수보리야,

앞으로 오는 세상에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능히 이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는 사람은

여래와 같은 공덕을 갖춘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깨달은 지혜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 그 사람이 무량무수하고 무변한 공덕을 성취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수보리는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고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여 우리들이 받들어서 수지독송하였으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하여 너희들은 받들어 수지독송하여라.”

그리고 수보리야,

내가 지금 말한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반야바라밀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어떤 법이라는 것을 설한 바가 있는냐?

수보리가 청정무구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어떤 법이 있다는 것을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

삼천대천 세계에 있는 티끌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아주 많습니다.

수보리야, 모든 티끌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실체가 있어 티끌인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을 지칭하며 그 이름이 티끌일 뿐이다.

그리고 여래가 설한 세계도 역시 어떤 세계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형상의 세계를 지징하며 그 이름이 세계라 하였을 뿐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삼십이상이란 실체가 정해져서 존재하는 형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래께서 현재에 나타내 보여지는 32가지의 형상들을 지칭하여 이름하길 삼십이상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항하에 있는 모래수 만큼이나 되는 무수한 목숨을 보시에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다른 어떤 이가 있어 금강경이나 사구게등을 이해하여 생명과 같이 받아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면서

타인을 위해 가르치고 널리 포교한다면 이 보시의 복덕이 더욱 깊고 수승한 것이다.

그리고 수보리야, 이 경이 설하여 진다거나 타인을 위해 전해진다거나 수지독송하거나 사구게 등의 뜻이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며 잊어버리지 않는 곳에는 일체의 세간에 있는 천인·아수라등이 부처님이 계시거나 불탑과 사원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 모두가 공양을 받들어 모신다.

그러므로 어떤 누구라도 금강경을 생명을 다해 마음속으로 잊어버리지 않으며, 외우고, 독송하는 곳에 어찌 공양하고

그 공덕을 찬양하지 않겠느냐?

수보리야,

이렇게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최상 제일의 희유한 법을 성취한 것이며, 또한 이 금강경이 설해지는 곳은

부처님이 계신것과 같고 존경받는 부처님의 제자가 계신것과 같다.

 

수보리야,

항하중에 있는 모든 모래수의 수만큼 많은 항하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항하에 있는 모래수는 얼마나 많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주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 하나의 항하중에 있는 모래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어찌 그 모든 항하의 모래수를 헤아려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보리야,

내가 지금부터 현상세계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진실된 복덕의 실체를 말로써 표현하여 너에게 말하자면,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비유한 바와 같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항하사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의

크기 만큼이나 많은 칠보를 가지고 보시에 사용한다면 이 복덕은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세존이시여, 너무나 많습니다라고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만일 다른 선남자·선여인이 있어 금강경중에 있는 사구게등이나 한 문장이나마 받아지니고, 이해하고, 실천하며,

독송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이 금강경의 의미를 설명하여 주는 보시의 복덕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하는 복덕보다 더 수승한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수보리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전생에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당시에 어떠한 결정적으로 정하여진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과거 전생에 연등부처님의 시대에 계실적에 여실하게 나타나고 결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은 법에 의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을 성취하였습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장엄함에 있어서 장엄이라는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국토에서 보살행을 한 것을 장엄이라 이름하여 불러줄 뿐이다.

그러한 고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여래와 같은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형상·소리·냄새·맛·감각·진리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아 이와같이 어떤것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머무는바 없이  집착됨이 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것의 마음을 일으켜야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어떤 사람을 비유하여 말하자면 몸이 수미산만큼하다고 말을 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몸이 크다고 생각하느냐?

“아주 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몸이란 어떤 진실되고 실체가 정해져 있는 몸을 기준하여 말씀하신 몸이 아니라

형상으로 나타내고 있는 현상적인 몸을 표현하여 몸이 아주 크다고 이름하여 불렀을 뿐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인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과위를 수다원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 과위가 정해져 있는

경지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나 소리·냄새·맛·촉감이나 어떤 진리의 결정적인 경지에 도달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한 집착됨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이름을 붙여서 수다원이라고 말할 뿐입니다라고

수보리가 말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스스로를 생각하길 나는 능히 사다함과위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이란 한번 왔다 간다는 것을 지칭하는 이름이 사다함이라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 사실은 왔다

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을 사다함이라고 이름지어 부를뿐입니다 라고 수보리가 대답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냐?

아나함이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나는 능히 아니함과위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그 이름의 의미가 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불리워 질뿐이며 실제적으로는 온다는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없는 연고로 이름하여 아나함이라 불리워 질뿐입니다라고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능히 아라한의 도를 성취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정하여진 어떤법이 없다는 것을 이름하여 아라한이다.” 라고 이름지어 부를 뿐이며 이것은 실제적으로

결정적인 어떤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것은 결정지어 정해져 있지 않는 것이 법이라 이름하여 아라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일 아라한이 나는 이 아라한의 도를 성취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은 아·인·중생·수자상에 집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가르쳐서 말씀하시길 너는 무쟁삼매를 성취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무쟁삼매를

성취한 자들 중에서 최고 제일이라고 지적하셨는데 이것은 욕심을 제일 멀리한 아라한이라는 뜻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욕심을 제일 멀리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면,

세존께서는 저를 가리켜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제가 실제로 아란나행이라는 행동을하고 있지도 않으며 아란나행을 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는 고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수보리의 행동을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으로 표현하여 수보리의

행을 지칭하였습니다라고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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